동충하초 책/한국동충하초(총론)

머리말

성재모동충하초 2010. 1. 10. 14:12

 

  1984년 9월, 동충하초와의 첫 만남은 한 마디로 마음 설렘이었다. 동충하초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는 곤충이고 여름에는 풀처럼 돋아나는 신비로운 버섯이다. 동충하초균에 의하여 감염된 곤충은 죽을 수밖에 없지만, 이듬해 여름 몸 밖으로 아름다운 버섯을 내보냄으로써 또다른 삶을 얻는다. 동충하초의 모습은 소위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윤회를 생각하게 한다. 의욕만을 앞세워 동충하초를 무작정 채집하러 나섰던 초기에는 아무런 소득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럴 때마다 ‘이러한 장소에는 동충하초가 채집되지 않는구나’라며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어느덧 경험이 축적되고, 이제는 동행하는 학생들도 잘 찾아 내는 것을 보며 흐뭇함을 느끼곤 한다. 동충하초를 찾아 여러 학생들과 더불어 참으로 많은 산을 헤매며 글로는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동충하초를 채집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몇몇 장면을 되새겨 보기로 한다. 1991년, 3박 4일의 일정으로 설악산과 오대산으로 동충하초의 채집을 나섰는데, 출발할 때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우리 일행이 설악산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신흥사에서 일박을 하기로 하고 여장을 푼 우리는 비를 맞으며 곧바로 동충하초 채집에 나섰다. 외설악 가는 길을 택하여 작은 대나무 숲을 헤치며 헤맸지만 비에 옷만 흠뻑 젖었을 뿐 찾고 있는 동충하초는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서운한 마음에 잠시 앉아서 혼자만의 명상에 잠겼다가 눈을 뜨고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내 주위에서 커다란 번데기동충하초를, 조금 과장하여 발자국을 뗄 때마다 하나씩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조화로 이렇게 많은 동충하초가 나올 수 있었을까? 채집에 열중하고 있을 때 비구니 스님 세 분이 많은 신도들과 함께 옆을 지나다가 신기하다는 듯, “무엇이 그리 중요한 것이 있기에 비를 맞으면서 찾고 계십니까?”하고 말을 걸어 왔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내심 섭섭하기도 했는데 관심을 보이는 분이 있어, 고마운 마음이 앞서 채집한 동충하초를 보여 주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신기하다는 듯이 듣고 있던 스님들은 훌륭한 일을 하신다면서 삼배를 하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한 신도들 역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스님과 같이 절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그 날은 그렇게 찾기 어려웠던 번데기동충하초만도 50여 개를 찾을 수 있었으니, 그 날의 감격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고 있다. 설악산을 출발하여 갈천을 거쳐 오대산 월정사에 도착하여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다시 나무 덩굴 속을 헤매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빨간색의 노린재동충하초가 발견된 것이다. 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같은 종류의 동충하초가 발견되는 것은, 곤충이 군집을 이루고 살다가 동시에 동충하초균에 의해 감염된 것이 틀림없었다. 한 달 후 다시 월정사를 찾았을 때는,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거품벌레를 기주로 하는 거품벌레동충하초를 발견하고 다수 채집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큰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들의 또 다른 채집 지역은 치악산과 강원대 연습림이었는데, 이곳은 다양한 종류의 동충하초가 발견되는 지역으로, 매년 국내 신종을 발견하기도 한,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동충하초의 채집을 위하여 많은 산을 헤매고 다닌 지 어언 10년, 동충하초가 잠재적으로 중요한 유전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나름대로 있었기에, 몇 년 전 채집한 동충하초를 사진으로 만들어 채집 및 연구 비용을 마련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관련 기업체를 찾은 적이 있었지만 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라도 힘 닿는 데까지 채집하고 균주를 수집하기로 다짐하면서 채집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채집에 필요한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를 토대로 많은 동충하초 균주의 채집과 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프랑스, 미국, 캐나다, 중국 등지의 방문 연구로 세계적인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국내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1994년에는 서울 MBC 방송에서 제작하는 자연 다큐멘터리 ‘한국의 버섯’의 동충하초에 대한 자문위원이 되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작은 동충하초를 보다 잘 소개하고 싶었던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 더운 여름을 동충하초 채집에 온 힘을 기울인 결과 송충이동충하초, 벌동충하초, 매미동충하초, 잠자리동충하초 등 여러 종류의 동충하초를 찾을 수 있었고, 이것이 TV를 통하여 방영되자 그 다음 날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전화 받기에 바빠졌다. 참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동충하초나 일부 버섯의 복용이 바로 병의 치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시청자들로부터의 전화인데, 내용인즉, ‘인삼 하면 한국’을 말할 수 있듯이, ‘동충하초 하면 한국’이라는 새로운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동안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여 본 결과 우리나라가 충분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만큼 그렇게 풍부하게 동충하초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요즈음 ‘세계화’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진정한 세계화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충하초의 연구도 우리 자연에서 찾아내고 분리하여,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보존하면서 이를 이용하여 우리의 것을 만드는 작업이 시급하다. 최근에 와서 여러 연구소와 기업들이 동충하초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까운 장래에 동충하초 하면 한국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동충하초의 연구를 위해서는 기본이 되는 동충하초 도감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에서, 별로 많지 않은 표본과 짧은 지식으로, 그러나 모든 정성을 기울여 도감을 만들게 되었다. 이 도감의 출판을 계기로 더욱 분발, 정진할 것이며, 동충하초를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잘못된 부분은 계속해서 수정하려고 한다. 끝으로, 동충하초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의 많은 채찍을 부탁드리고 싶다. 이 동충하초 도감이 나오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가 힘이 되었으며, 이 도감 제작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마지막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군충 중에서 동충하초균에 감염된 곤충은 죽은 다음 아름다운 동충하초 버섯으로 변하는데, 필자는 죽어서 무엇으로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여운을 남기면서 맺음말을 대신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