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외부나드리

현충사에서 충무공을 만나다.

성재모동충하초 2010. 6. 5. 07:11

  오늘은 한국농수산대학에 가서 학생들에게 버섯 강의하는 날이다. 아침 7시 30분 버스로 횡성을 거치어 원주에서 9시 차로 수원에 도착하니 10시 10분이다. 외사촌 동생이 수원에서 한의원을 개업한지 10일이 되어 먼저 세류3동 사무소에서 100미터 떨어진 장소에 해인부부한의원인데 방문하여 보니 무척 바쁘다. 가지고 간 아토피 피부염연고와 성재모동충하초를 가지고 가서 앞으로 동충하초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보라고 하였다. 동생이 피부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 바로 발라보고 낳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낳아지기 바란다.

  한국농수산대학에가서 강의를 하고 수원에서 4시 새마을 열차로 온양온천에 도착하니 5시로 현충사에 도착하니 5시 30분으로 경내로는 들어 갈 수 없단다. 5시에 입장을 하기로 되어 있다고 하나 이곳에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 하니 들어가도록 허락하여 경내를 볼 수 있었다. 현충사를 방문한 것은 1971년 5월5일 수원에서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지로 현충사를 찾았는데 지금부터 39년이 지나고 찾으니 그때 보다 나무도 많이 자랐고 잘 정리가 되었다. 39년전 현충사를 찾은 것은 아들이 점지한다면 이순신과 같은 나리를 구할 수 있는 아들을 달라고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을 하였다. 그러한 인연으로 아들을 갖게 되었다. 그 아들이 지금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을 하였다.

  현충사에 들어서자 마자 백회에서 기운을 느끼면서 이충무공을 선명하게 뵈을 수 있었다. 밖으로 나와 멀리서 이충무공 사당이 있는 산을 보니 산세가 너무 좋다.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장소에서 한 시간 동안 이 어려운 시기에 충무공의 보살핌으로 나라가 화합하여 평안하여 지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을 하였다. 오늘도 좋은 하루이었다 특히 충무공을 알현하고 그 삶을 조명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충무공의 탓하지 말라를 글로 남긴다.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2.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야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3.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4.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5.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6.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7.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다. 8.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지 마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9.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10.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마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11.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