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헤여질 시간이다. 아쉽지만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동생과 함께 태어나고 이렇게까지 길러준 부여군 임천면 발산리 320번지 1에 위치한 집을 찾아갔다. 집을 떠난지는 벌써 오래 되었지만 지금까지 시골 집을 그대로 갖고 있다. 지금은 일가 되시는 형님이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에 와서 살고 싶다고 하여 벌써 몇년째 살고 계시다. 집을 둘러 보고 이제까지 키워 준 조상님들의 산소에 지극한 감사의 표시로 절을 하였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형수님과 형님을 만나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횡성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모두 일에 바빠 이야기 할 시간도 없다.
이곳은 어렸을 때를 생각하여 보면 20여호가 안되는 성가의 집성촌으로 사육신인 성상문 할아버지가 죽음을 당하였을 때 이곳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인지 어린적에는 매우 오지이고 지금도 그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집에서 보면 앞이 딱 트었는데 논이 있고 앞에 200m 정도의 높이인 등고산이 있고 그 아래에 버스길이 있어 하루에 4번 정도 다니는 오지 중에 오지이다. 우리 동네 어른 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알으시고 아들들을 공부를 시키어 형님이나 동생이 7명이 교장으로 정년을 하였고 교수도 나왔으며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형도 둘이나 된다. 그래서 그러한지 전부 나가 있어 지금 고향을 지키는 사람은 사촌 형님 내외와 형수님과 두분의 형님이 계시고 농사를 짓기 위하여 들어온 사람들을 합하여 보아도 몇 가구가 되지 않는다. 많은 집이 없어지고 지금은 몇가구가 되지 않지만 살고 있는 집은 그대로 있지만 앞으로 이곳에 살 수는 없고 어떻게 살았던 집을 보호를 할 것인가가 화두다. 없애면 정이 들었던 집을 다시는 볼 수 없지만 집은 자꾸 해가 갈 수록 낡아간다. 아마도 이것은 생물학 공부하였기 때문에 옛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성장하게 한 마을이 활기가 넘치어야 하는데 너무 조용하여 앞으로 살기 좋은 농촌이 되기를 바라면서 무거운 걸음으로 동네에서 나왔다.
'사는 이야기 > 외부나드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전고등학교 총동창회 대능가족 등반대회에 참석하다(101017 (0) | 2010.10.18 |
---|---|
이명박 대통령님! 황우석 박사의 연구승인을 허용해 주십시요! (0) | 2010.10.17 |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다(101016) (0) | 2010.10.17 |
2010 세계대백제전을 가다(101016) (0) | 2010.10.17 |
부여에 오다(101015) (0) | 2010.10.17 |